영실코스에서 윗세오름에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영실 탐방로 입구 휴게소(해발 1,280m)다. 그곳이 만차이면 약 2.5km 아래의 영실 매표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나름 아침 일찍 출발한다고 했건만, 영실 입구에 접어드니 8시도 채 안되었는데 매표소에 닿기도 전부터 내려오는 길가로 차들이 주차하기 위해서 줄줄이 늘어서 있다. 혹시 매표소 주차장마저 만차여서 되돌려 나오는 차들인가 불안해 하면서 일단 매표소까지 올라갔다. 역시나 만차였다. 어쩔 수 없이 한참을 되돌아 나와 맨 끝 차량 다음에 자리를 잡았다. 매표소 주차장에서 1 km 정도 내려온 지점이었다. 탐방로 입구까지는 이 가파른 오르막을 약 3.5km 나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앞이 캄캄했다.
간간이 택시가 지나쳤지만 빈 차는 한 대도 없다. 아내는 혹시 합승이라도 될까 싶어 지나가는 택시마다 두 손가락(따블아니고 두 명)을 세워 손짓을 해댄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잡힐 리 없다고 반쯤 포기하고 있던 순간 방금 스쳐 지나간 택시가 한참 위에서 멈추더니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올라오라고 한다.
아내가 따라오든 말든 정신없이 뛰어 올라갔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 한 분이 앞자리로 자리를 옮기며 "어차피 가는 길인데 같이 타시죠"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아내가 올라 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차에 올랐다.
매표소에서 탐방로 입구까지는 경사가 한층 더 가팔랐다. 내리면서 합승 요금을 드리려 했더니 손님도 기사님도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걸어 올라왔다면 족히 한 시간 이상은 걸렸을 구간이다. 실제로 걸어서 올라온 어떤 아주머니는 이제 겨우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더 갈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출발하니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날씨와 기온도 산행하기에 딱 알맞다. 윗세오름을 지나 남벽분기점까지 갔다 올 예정이었으나 직전 방애오름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렸다. 왕복 19km이나 주차 위치에서 영실탐방로 입구까지 택시를 이용한 3.5 km 제외하면 걸은 거리는 15.5 km 이다. 출발지점 고도 980m, 윗세오름1,740m, 상승고도 약 700m 이다.



* 윗세오름은 "위에 있는 3개의 오름" 이라는 의미이다. 백록담과 가까운 순서대로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 세 봉우리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탐방로 입구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올라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영실 기암과 오백나한상의 절경이 나타난다.


산 아래로는 크고 작은 오름들이 솟아 있는 드넓은 평원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이어서 나타난 병풍바위는 시야를 압도한다.



한라산을 여러 번 찾았으면서도 정상까지 갈 수 없다는 이유로 항상 제외해왔던 코스인데, 이 경치는 성판악 코스나 관음사 코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병풍바위를 옆으로 돌아 올라서자 철쭉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6월인데도 철쭉이 만발이다. 철쭉은 예상못했터라 감탄은 두배다.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 철쭉과는 전혀 다른 감동이다. 황매산 철쭉이 화려하고 다소 인공적으로 조성된 느낌이라면, 한라산 철쭉은 광활한 평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한층 세련된 아름다움을 풍긴다.


한라산은 4월 말~5월 초에 털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이고, 5월 말~6월 중순에는 철쭉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산을 장식한다고 한다. 이 평원을 제주말로는 '선작지왓'이라 부르는데, '작지'는 돌, '왓'은 밭, 벌판을 뜻하여 '돌들이 서 있는 벌판'이라는 의미란다.

윗세오름 가는길 해발 1,657m 에 있는 노루샘은 연중 내내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산행객들의 주요한 식수원이 되고 있다.

윗세오름(해발 1,740m)을 뒤로하고 탐방로를 따라 남벽분기점으로 향했다. 활짝 핀 철쭉밭은 끝없이 사방으로 펼쳐졌고, 그 뒤로는 한라산 화구벽이 버티고 섰다.




수직으로 구불구불 패인 검은 절벽은 용암이 흘러 내린 자국, 모서리를 따라 기와지붕 추녀마루의 잡상처럼 솟아오른 돌 형상들은 용암이 분출하며 튄 모양처럼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 하다.



윗세오름 선작지왓을 지나 남벽분기점으로 가던 중, 반대편 산 아래에서 올라 오는 짙은 연무가 갑자기 사방을 에워 싼다. 몇 미터 앞도 분간이 어렵다. 방애오름 전망대에 다다랐을 때 더 나아가는 게 의미가 없겠다 싶어 발길을 돌린다.


올라올 때는 사방이 탁 트여 멋진 전망을 즐겼는데, 돌아오는 길엔 윗세오름 오르는 구간까지 안개가 자욱하다. 지금 막 올라오는 등산객들은 우리가 보았던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못할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산행은 산행거리나 상승고도가 가벼운 코스는 아닌데 경치가 너무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내내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것 같다.

산행 중에 만나는 야생화와 나무들은 웬만하면 제주 특산종이다. 식물 이름에 '섬~', '한라~', '제주~'가 붙는 것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사방에 펼쳐진 조릿대는 '제주조릿대'이고, 설악산에서 보던 매발톱나무는 여기서는 '섬매발톱나무', 노린재나무는 '섬노린재나무'이다. 분홍빛 화사한 꽃의 설앵초는 '한라설앵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구절초와 솜다리는 '한라구절초', '한라솜다리'이다.



제주 특산종이자 보호종인 구상나무는 초록, 붉은, 검은 열매를 달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열매 색깔에 따라 푸른구상나무, 붉은구상나무, 검은구상나무라고도 한다. 영명은 Korean Fir (한국전나무) 이고 학명도 Abies koreana 이다 . 실편 끝의 침이 뒤로 젖혀지면 구상나무, 안 젖혀지면 분비나무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어서 특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아로니아와 많이 닮은 토종 윤노리나무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참빗살나무도 작고 소박한 연두빛 꽃을 활짝 피웠다. 여러 괴불나무 종류 중 짙은 자주색 작은 꽃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홍괴불나무도 쌍쌍이 짝을 이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꽃댕강나무는 이제 막 개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위가 많은 벌판 바닥위 를 덮으며 자라는 돌가시나무도 찔레꽃 모양의 하얀 꽃을 피웠다. 잘 요리된 먹음직스러운 써니사이드업 계란후라이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고지대에서만 자란다는 흰그늘용담도 신비로운 자태로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특산종이자 멸종위기종인 바위미나리아재비는 흰그늘용담과 나란히 노루샘 옆에서 맑은 물을 즐기고 있다. 산장대는 꽃이 너무 작아 초점을 맞추는데 숨을 참느라 숨이 멎을 지경이다. 병풍바위를 배경으로는 순백의 민백미꽃이 피어 있다. 한라산과 높은 산지에서 산다는 바람꽃, 세바람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라산을 내려와 서귀포 올레길 7코스와 천제연 폭포 일대를 돌아 보았다. 제주도에서는 흔한 나무들이지만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많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와서 외국에 온 듯하다.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외국인 비율이 더 높은 듯하다.
이른 봄 달마산에서 새빨간 새순이 인상적이었던 예덕나무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부산 가덕도에서 무화과 미니어처같은 열매를 달고 있던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여 찾아 봤던 기억이 있다. 토종 무화과나무, 천선과나무다. 잎 모양이 전혀 다른 좁은잎천선과와 함께 제주에서는 흔하게 볼수 있다.(올레길7코스에서)







올레길 어느 집 담벼락에 자리 잡은 세시화(자금성)는 꽃이 피는 시각인 3시를 기다리며 꽃망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노란 꽃의 괭이밥 대신에 진한 자주색 꽃이 매력인 자주괭이밥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올레길 옆 습한 곳에서는 후추등이 길다란 꽃을 늘어뜨리고 나무들을 감싸고 있다. (올레길7코스에서)







부산에서 처음 만났던 먼나무는 보일 듯 말 듯 꽃을 피우면서도, 작년에 맺은 붉은 열매를 아직 다 떨구지 못하고 있다. 날렵한 꽃잎의 멀구슬나무도 파스텔톤 자줏빛 꽃으로 매력을 뿜는다. 서울에서는 꽃피는 것을 보기가 어려운 마삭줄은 어디에서나 바람개비 모양의 꽃이 만발해 있다. (오설록에서)











제주도, 완도 등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조록나무과의 원조 격인 조록나무도 있고, 사시사철 잎 여덟 장 가운데 하나는 꼭 붉게 물들어 있다는 담팔수도 만날 수 있다. 잎도 꽃도 태산만큼 큰 목련, 태산목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천제연폭포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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