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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설악산 (1,708 m) 서북능선 종주 (28km)

by 천남성 2025. 6. 14.

설악 서북능선 종주, 미지의 길을 걷다

작년 11월 오색에서 점봉산을 오를때  줄곧 시야에 들어와 있으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설악산 서북능선, 5월 15일 국립공원 입산통제가 풀리자마자 가장 빠른 종주 가능한  일정을 세워 본다. 100km 한강  울트라마라톤 등 이미 잡힌 일정을 제외하고 가장 빠른 날인 6월 8일을 D-day로 잡았다. 자가운전, 대중교통 등 교통편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안내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 같아서 좋은사람들 안내산악회 버스를 예약했다. 드디어 종주에 나섰다.


어둠 속으로: 대청봉을 향한 발걸음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입장가능 시간인 새벽3시,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 든다. 3시 3분, 우리 버스 도착이 좀 늦었는지 이미 많은 등산색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서둘러 무리속에 묻혀 들어 간다. 앞뒤로 랜턴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예전엔 반딧불 생각하면 신형원의 "개똥벌레"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요즘은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노래가 귓가를 울린다. 대청봉에서 늦은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남보다  긴 종주코스를 가야한다는 조급함에 계속 추월한다. 앞 사람에 막혀 속도가 줄면 랜턴을 주위로 비춰서 야생화와 나무들도 살펴 본다.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함박꽃, 고광나무 꽃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고도가  높아 지면서 주위도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박새, 두루미꽃, 매발톱나무의 노란 꽃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검은 털옷을 뒤집어 쓴 요강나물,  그와  많이 닮은 자주빛 세잎종덩굴도 곳곳에 보인다. 평지에서는 벌써 꽃이 지고 열매를 맺고 있는 귀룽나무는 여기 고산지대에서는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다. 바람이 세서 나무도 크게 자라지 못하고 나지막하다.   


정상의 순간과 스쳐 가는 풍경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대청봉이다. 5시 29분이다. 사람들이 몰려 들기 전에 얼른 정상석 인증사진을 찍는다. 구름이 많아서 해는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는 틈에 잠깐씩 동해 바다위의 붉은 햇살이 보였다 사라진다. 바람막이를 껴 입었지만 바람이 세고 너무 춥다. 손이 시렵다. 오래 있기가 힘들다. 중청을 향해서 내려선다. 내려가는 길에 동해 바다위가 불타오르는 듯한 경치가 잠깐 펼쳐진다. 장관이다.  여기저기서 탄성을 자아낸다.
 
중청대피소는  공사중이다. 대부분 등산객들이 소청봉쪽으로  향한다. 끝청봉으로 가는 사람은 혼자뿐이다. 갑자기 조용해지고 인적이 없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공룡능선이나 천불동계곡 쪽은 익숙하나 이 길은 처음이다. 그래도 길이 잘 되어 있어서 낯설지는 않다. 한계령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띄엄 띄엄 올라오기 시작한다. 반갑고 마음이 평안해 진다. 


야생화의 향연, 그리고 너덜길의 도전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주먹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또 걷는다. 단풍나무 형제들인 부게꽃나무와 시닥나무들도 꽃들을 활짝 피우고 나름 뽐을 내본다. 산꿩의다리는 잎만 무성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데 꿩의다리아재비는 노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볼 때마다 원숭이 얼굴이 떠오르는 벌깨덩굴 꽃은 유난히 크고 풍성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끝청봉(1,610 m)이다.  정상석도  없고 이정표만  있다. 특별할게  없다. 안개와  구름이 많아서  주변  경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잎 주위에 서리가 내린 듯한 털진달래는 수줍게 드문 드문 진달래 꽃을  피우고 있다.  이른 봄에 피는 노랑제비꽃도 여기서는 지금 활짝 피어 있다. 꽃 모양도 조금 느낌이 다르다. 위쪽 화피 2개와  좌우 화피 2개가 살짝  겹쳐 있다. 혼자서 설악노랑제비꽃이라고 명명해 본다.  화려한 분홍빛 큰앵초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금빛 꽃잎에  점들이  박혀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금강애기나리도  한동안 걸음을  함께 한다.
야생화를 찍으면 산행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마음이 조급해 진다. 애써 외면하고 지나치지만 계속 눈앞에 어른거려 다시 발길을 잡는다. 손을 들고 만다.  금마타리,  눈개승마, 풀솜대,  산앵도나무, 족도리풀, 삿갓나물까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저 멀리 귀때기청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  올랐던  맞은 편 점봉산에서 유난히 눈에 띄어 가까이서  보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 길에 와있다. 악명 높은 바위 너덜길이다. 자갈길을 상상했는데 그냥 너덜길이 아니다. 해변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를 뛰어 건너는 느낌이다. 발디딜 공간도 넓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테트라포드 사이로 떨어질 것 같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집중을 해야 한다.  한낮의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이런 길을 한참 올라 간다. 동해 바닷가 방향은 여전히 구름이 많다.   서쪽 내륙 방향으로는 구름이 거의 없다. 

귀때기청봉(1,578 m)에서 대청봉, 점봉산은 아직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내륙쪽인 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은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끔씩 나타나는 꽃이 만발한 철쭉이 너무나 화사하다. 지금이 6월인데  이제서야 철쭉이 만발이라니. 조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가다가 산행 전 구간에서 딱 한군데 피어 있는 기생꽃을 하마트면 놓칠 뻔했다.  대암산 용늪에서 멀리서 어렴풋이 보였던 그렇게  귀하다는 기생꽃이 바로 눈앞에서 무리지어 피어 있다. 


끝나지 않는 길, 마지막 고비를 넘다

귀때기청봉을 지나서 지루한 내리막, 오르막이 반복된다.  보조배터리는 0%이고,  휴대폰 배터리는 바닥을 향하고 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트랭글도 끈다. 이제부터 이정표만 보고 가야한다. 다음 이정표인 대승령까지는 아직 까마득하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지 않는다. 체력도 떨어 진다. 반대쪽에서 올라 오는 등산객에게 남교리에서 출발해서 오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오색에서 출발해서 왔다고 하니 자기는 대청봉 오르고 오색으로 내려 간다고 한다. 대승령까지만 가면 그 다음은 편한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그래 일단 대승령까지만 가보자. 이제 곁눈질 안하고 앞만 보고 걷다 달리다 한다.
 
대승령 (1,210 m) 에 오니 주변 각 등산로의 고도를 표시한  안내도가 있다. 대승령에서부터는 내리막길이라고 했는데, 남교리 방향 등산로가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르막을 더 올라가서 내려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길을 따라 간다. 오르막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예상치 않았던 오르막이라  더 힘들다. 내리막을 만날때까지 한참을 씩씩대며 올라가야 했다. 휴대폰도 배터리가 다  닳아서  꺼졌다.
 
편한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임도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길은 끝까지 없었다. 물도 다 떨어졌다. 허기와  갈증에  오로지  앞만  보고 간다. 복숭아폭포, 그 멋있는  폭포가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휴대폰도 꺼졌으니  사진으로 담을 수도 없다. 목이 탄다. 주위 사람들한테  좀 얻어 마실까 하다가 마라톤 할 때는 10km도 무급수로 달렸으니 일단 밀어 붙여 본다. 탈수로 쓰러지는 것 아닌가 ? 119에 구조 요청을 해야 하나? 내려가면 탐방지원센터 문을  박차고 들어가 물을 내놓으라고 해서  실컷  마셔야지.  옆에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마셔도 괜찮을까 ? 별 상상을 다 한다. 
결국 날머리 2km 정도 남겨 두고 다른 등산객에서 급수지원 요청을 한다. 다행히 흔쾌히 물병을  내주신다. 나도 모르게 급하게 마셨는지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고 천천히 마시란다. 


완주

날머리에 도착하여 버스가 오기로 되어 있는 순대국밥 집으로 간다. 버스 도착시간까지 1시간 반 정도 남았다. 국밥을  주문하고 휴대폰 충전을 부탁한다. 트랭글을 다시 켜서 산행을 종료한다.  


  

  • 산행일시 : 2025/06/08 (일)  03:03 ~ 16:00   (전체시간 : 13시간 )
  • 산행경로 : 오색지구(남설악탐방지원센터) - 대청봉 - 중청 -  끝청 -  귀때기청봉 - 큰감투봉 - 대승령 - 남교리 탐방지원센
  • 해발고도 : 출발지 460 m, 정상 1,708 m  (총 상승고도 2,545 m)
  • 산행거리 : 28 km
  • 날씨 : 흐리다 갬.  기온 16 ~ 33 도

 

산행경로

▲ 트랭글  경로는 휴대폰 배터리 부족으로 다  날라갔다. 가민시계  경로로 대신한다.

출발대기

▲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에서 등산객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요강나물

▲ 요강나물.  낮은  키에  꽃은  털북숭이다.
 
 

세잎종덩굴

▲  세잎종덩굴
 

귀룽나무

▲  귀룽나무
 

대청봉

▲  대청봉
 
 

일출

▲  일출. 구름속에서도 동해 수면위에 비쳐  일렁이는 햇살이 타오르는 불길 같다. 
 
 

가는잎개별꽃

▲  가는잎개별꽃
  

시닥나무

▲  시닥나무
 

 ▲  벌깨덩굴
 

꿩의다리아재비

▲  꿩의다리아재비
  

끝청 이정표와 안내도

▲  끝청
 

 

털진달래

▲  털진달래
  

큰앵초

▲  큰앵초
  

눈개승마

▲  눈개승마
  

풀솜대

▲  풀솜대
 

산앵도나무

▲  산앵도나무
  

홍괴불나무

▲  홍괴불나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자주색 꽃망울이 맺혀 있다.
  

족도리풀

▲  족도리풀, 꽃을 내밀하게 숨기고 있다. 꽃잎은 퇴화하여 없어지고 꽃받침만 남아 있다.
  

삿갓나물

▲  삿갓나물
 

 
 

두루미꽃

▲  두루미꽃
 

금강애기나리

▲  금강애기나리
 
   

부게꽃나무

▲  부게꽃나무
 

▲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설악의 위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참빗살나무

▲  참빗살나무
 
 

금마타리

▲  금마타리
 

귀때기청봉

▲  올라가야 할 귀때기청봉이  꽤 높아  보인다.
 
 

노랑제비꽃

▲  노랑제비꽃
   

인가목

▲  인가목

 
 

말발도리

▲  말발도리
 
 

▲  왼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점봉산일 듯하다.

 

▲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는 가리봉(?)

 

▲  귀때기청봉을 오르는 너덜길 구간, 길은 없다. 막대기가 길 안내를 한다.

 

▲  설악의 다른 암릉들은 늠름히 잘 버티고 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산산조각 났을까?  풍화와 침식작용의 결과라는데 왜 여기는 유달리 심하냐는 것이지.

 

▲ 작년에는 점봉산에서 여기 뀌때기청봉을 바라 보며 신비감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귀때기청봉에서 점봉산을 바라보며 저기 정상에서 여기를 보고 있는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

 

 
 

댕댕이나무

▲  댕댕이나무.  인동덩굴, 괴불나무, 길마가지 등 인동과의 많은 종들 중의 하나이다.  흰가루에 덮힌 자주색의  열매가 댕댕이덩굴의 열매와  색감이 비슷하여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  서양측백. 흔히 보는 토종 측백나무가 아닌 원산지가 북아메카인 서양측백이다. 측백나무는 열매가 도깨비 뿔모양의 둥근 모양이다. 서양측백의 열매는 약간 길쭉하고  꽃송이 모양이다. 측백나무보다 잎이  풍성하고 수형이 좋아서 요즘 공원등에  조경용으로 식재되는 측백나무는 대부분 서양측백이다. 여기 귀때기청봉에 누가 심은 것은 아닐텐데.
 

▲  매발톱나무
 
 

▲  귀때기청봉 너덜길의 마지막 길안내 막대기다.
 

▲  흰인가목
 
 

▲  귀때기청봉. 이정표만 있다. 저 뒤에 가리봉과 주걱봉이 구름에 가려 실루엣만 보인다.

 

▲  귀때기청봉에서.
 

▲  철쭉이 화려하다. 
 
 

▲  내려가면서 뒤로 보이는 뀌때기청봉. 
 

기생꽃

▲  기생꽃
 
 

▲ 점봉산 방향  (왼쪽 위)

 

▲ 멀리 가리봉(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 주걱봉(그 오른쪽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이  보인다.


▲  털개회나무 (정향나무). 미스김라일락의 원조
 

▲  사람 얼굴인가 ? 동물 머리인가 ?
 

▲  복장나무. 삼출옆이 복자기와 많이 닮은 복장나무. 복자기가 아닌데 자꾸 복자기라고 해서 복장 터지는 나무.
 
 

▲  청괴불나무
 

 
▲ 대승령.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다. 사진찍기도 끝, 트랭글도 종료.